아치 카라스(본명: Anargyros Karabourniotis)가 7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도박과 포커 역사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The Run'이라는 전설적인 도박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1992년 12월, 주머니에 단 50달러를 들고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던 카라스는 그 후 몇 년 동안 약 5천만 달러를 벌었다가 모두 잃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난에서 전설적인 도박사로: 아치 카라스의 시작
1950년 11월 1일 그리스에서 태어난 아치 카라스는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도박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곧 당구를 부업으로 시작하며 더 많은 수익을 얻었습니다. 당구는 그에게 상당한 수입을 안겨주었으나, 곧 상대할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그는 포커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카라스는 1990년대 초에 포커를 통해 200만 달러의 자산을 축적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포커 전설들인 도일 브런슨과 칩 리스는 그의 실력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핸디캡을 주고 게임에 참여시킬 정도였습니다. 결국 1992년 12월, 그는 포커에서 모든 자산을 잃고 단 50달러만 남긴 채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The Run': 전설적인 도박 승리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카라스는 한 포커 플레이어에게 1만 달러를 빌렸고, 이를 고액의 '레즈(razz)' 게임에서 3만 달러로 불렸습니다. 그는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도박을 계속하며 라스베이거스 전역의 당구장에서도 수십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세계 포커 시리즈(WSOP)의 본거지인 비니언스 홀스슈(Binion's Horseshoe)에서 '미스터 X'로 알려진 고액 도박사와 맞붙었고, 몇 달 만에 7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카라스는 포커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박에 도전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그중에는 스투 웅거, 칩 리스, 조니 찬, 조니 모스와 같은 전설적인 포커 플레이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도일 브런슨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승리한 카라스는 자신의 이름을 도박 역사에 남기게 됩니다.
불멸의 도박 'The Run'의 끝과 몰락
카라스의 전설적인 승리 기록은 결국 비극적으로 끝났습니다. 1995년,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도박을 계속했으나, 단 3개월 만에 5천만 달러 중 1,200만 달러만 남기고 모든 자산을 잃었습니다. 대부분의 돈은 크랩스와 바카라에서 사라졌고, 일부는 다시 칩 리스에게 패배하며 잃었습니다.
그는 다시 몇 차례의 작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대부분의 돈을 카지노에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2014년, 카라스는 샌디에이고의 한 카지노에서 블랙잭 게임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벌금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2015년 네바다 게임 위원회(NGC)는 카라스를 '블랙 북(Black Book)'에 추가해 네바다 전역의 카지노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이는 네바다 주에서 도박이 금지된 전설적인 도박사 목록 중 33번째 이름이었습니다.
아치 카라스의 유산
비록 카라스는 대부분의 자산을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포커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그는 세계 포커 시리즈(WSOP)에서 여섯 번의 입상 기록을 세웠고, 그중 네 번의 결승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그의 마지막 WSOP 성적은 2013년 2,500달러 레즈 이벤트에서 26위를 차지하며 4,759달러를 획득한 기록이었습니다.
카라스의 인생은 끝없는 도박과 굴곡진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하나의 전설적인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그의 삶과 'The Run'은 도박과 포커 역사에서 영원히 회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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